국가와 애국가의 차이: 개념, 역사, 그리고 한국 애국가의 탄생

5. 국가와 애국가(愛國歌)

 

2018년 10월 22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AFC U-19 챔피언십 한국과 요르단 경기 전. 그런데 경기를 알리는 음악으로 대한민국 애국가 대신 북한 국가가 연주되는 일이 벌어졌다. 북한 국가의 제목이 ‘애국가’라는 점 때문에 주최 측이 착오를 일으킨 것이다. 물론 우리 애국가와는 전혀 다른 노래였지만, 국제무대에서 일어난 대형 사고였다.

‘국가(國歌)’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공식 음악이다. 반면 ‘애국가(愛國歌)’는 나라를 사랑하는 정서를 담은 노래를 뜻하며, 공식 지정 여부와 관계없다. 두 개념은 종종 혼용되지만, 정확히는 다음과 같다:

 

◉ 국가: 하나의 나라에 단 하나만 존재, 공식적으로 제정됨

◉ 애국가: 공식 여부와 무관하게 여러 개 존재 가능

 

국가와 애국가는 개념이 다르고 국가는 하나여야 하지만 애국가는 여럿이어도 상관없다는 점, 이 점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임진택 판소리 명창)

 

예컨대 다른 나라의 국가를 ‘애국가’라고 부르면 어색해진다. ‘애국가’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자국을 향한 감정이 담긴 노래를 일컫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5-1. 개화기 조선, '애국가'라는 이름의 노래가 속속 등장하다

 

1876년 병자수호조약 이후 외세의 압박 속에 조선은 자주독립과 민족의식이 고조된다. 그 흐름 속에서 ‘애국가’라는 제목을 가진 노래들이 창가 형식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서양식 선율에 조국애를 담은 시 형태의 노래들로, 열강에 맞서 민중이 부르기 시작한 저항의 노래였다.

 

독립신문
독립신문(위키피디아)

 

1896년 《독립신문》 창간 이후 다양한 애국가 가사가 신문에 실렸고, 1902년 대한제국은 국가적 행사에서 '애국가'라는 제목의 노래를 사용했다. 이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성자신손 오백 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수 고려 동반도는 우리 본국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조선 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존하세

 

이천만 오직 한 마음 나라 사랑하여

사농공상 상하 없이 제 직분 다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조선 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존하세

 

가사 내용은 민족 정체성과 황실의 정통성을 드러낸다.

 

 
 

5-2. 한국 최초의 애국가 멜로디는 '올드 랭 사인'

 

올드 랭 사인
올드 랭 사인 악보(위키피디아)

 

1900년대 초, 애국가 가사에 처음 얹힌 멜로디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Old Lang Syne)’이었다. 이 노래는 ‘그리운 옛날’이란 뜻으로, 영어로는 ‘Old Times’ 정도로 번역된다.

 

오래된 인연을 어찌 잊어먹고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으리?

오래된 인연들과 지난지 오래된 날들

어찌 잊으랴?

 

오랜 옛날부터, 내 사랑아

오랜 옛날부터

다정한 한잔 축배를 드세

오래된 옛날을 위해

 

 

로버트 번스
로버트 번스(위키피디아)

 

이 멜로디는 1788년 시인 로버트 번스에 의해 악보로 정리되었으며, 아시아권에서 널리 사랑받았다. 일본은 이를 군국주의 노래 ‘호타루노 히카리’로 번안했고, 한반도에도 자연스럽게 퍼졌다. 1896년, 누군가 이 곡에 한국어 가사를 얹었고, 그게 오늘날 우리가 아는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시작이었다.

 

 
 

5-3.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남은 '올드 랭 사인'

 

1919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개원식에서는 이 멜로디에 한국어 가사를 붙인 노래를 애국가로 공식 채택했다. 감성적인 멜로디와 민족 정체성을 고취하는 가사는 민중을 하나로 모으기에 충분했다.

비슷한 시기 몰디브도 같은 멜로디에 맞춘 애국가를 만들었다. 1948년 몰디브의 문화부장 무함마드 자밀 디디는 올드 랭 사인을 듣고 감동받아, 조국에 대한 헌사를 담은 가사에 얹었다. 이 노래는 1972년까지 몰디브의 국가로 쓰였다.

1935년 작곡가 안익태가 유럽 음악 양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애국가를 만들었다. 이 곡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공식 행사에서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후 학교 교과서에도 실리며 사실상의 국가가 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성문법 어디에도 ‘국가’에 대한 명시적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홍범도 장군
홍범도 장군(위키피디아)

 

2021년,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식에서는 현재의 애국가가 아닌 ‘올드 랭 사인’ 멜로디의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이는 장군의 시대, 즉 독립운동 당시의 애국가가 그만큼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역사의 맥락 속에서 우리는 지금의 ‘애국가’가 어떻게 ‘국가’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두 개념이 왜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는지를 되새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