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소울푸드, 라면. 간편하면서도 깊은 맛으로 사랑받는 인스턴트 라면은 한국 식문화의 상징 중 하나다. 다양한 브랜드와 맛이 경쟁하는 가운데, 2024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스턴트 라면 순위를 10위부터 1위까지 소개한다.(한국갤럽) 10위: 육개장 사발면 (농심) 간편한 컵라면의 대명사. 얼큰한 국물과 부드러운 면발이 특징으로, 바쁜 일상 속 한 끼로 제격이다. 참고로 2014년 5월부터 봉지면도 출시하여 판매 중이다. 9위: 짜파게티 (농심) 한국식 짜장면의 맛을 라면으로 구현한 제품. 고소한 풍미와 쫄깃한 면발이 조화를 이룬다. 짜장면과 스파게티의 합성어로 1984년 3월에 첫 출시됐다. 2004년 9월 사천요리 짜파게티를 출시하였는데, 고추기름이 들어있다. 8위..
8. 라면의 세계화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Korean Englishman)"에서 2014년 2월 업로드한 ‘런던의 불닭볶음면 도전!!’ 영상은 1,100만 회 이상 조회되었다. 다양한 유튜버들이 ‘불닭 챌린지’ 영상을 업로드하면서 불닭볶음면은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Fire Noodle Challenge’라는 키워드로 글로벌 유튜브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8-1. '도시락'의 성공 신화 한국 라면의 첫 수출은 1969년으로, 삼양식품이 베트남에 15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이후 1971년 농심이 미국 교포 시장을 대상으로 라면을 수출하면서 해외 진출이 본격화되었다. 1980년대에는 삼양과 농심의 수출 경쟁이 치열해졌으며, 1986년 출시된 팔도 ‘도시락’은 러시아..
7. 라면의 대중화 7-1. 혼분식 장려 운동과 라면의 급성장 1966년, 정부는 만성적인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혼분식 장려 운동을 시행했다. 쌀밥 소비를 줄이고 밀가루 음식(분식)을 제2의 주식으로 장려하는 정책이었다. 이로 인해 한국인의 식생활이 변화하며, 라면이 대중화될 기반이 마련되었다.특히 1967년 3월 23일, 육군장교부인회가 대통령 부인이 기증한 라면을 직접 끓여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라면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66년 11월: 월간 판매량 239만 개◉ 1967년 7월: 월간 판매량 500만 개◉ 1968년 1월: 월간 판매량 1,200만 개 이러한 급성장에 힘입어 삼양식품은 추가적인 제조 기계를 도입했지만,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
6. 한국 라면의 시작 1961년, 당시 남대문시장에는 꿀꿀이죽을 파는 노점이 줄지어 있었다. 전중윤(당시 제일생명보험 사장)은 호기심에 20분 동안 줄을 서서 꿀꿀이죽을 사 먹었다. 그러나 먹는 도중 단추 조각이 씹혀 나왔고, 그릇 속에는 담배꽁초까지 섞여 있었다. 이를 보고 충격을 받은 그는 "먹거리를 해결하지 않고선 보험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며 사장직을 내려놓았다. 전중윤은 보험회사 근무 시절 일본 연수 중 먹었던 인스턴트 라면을 떠올렸다. 마침 안도 모모후쿠는 인스턴트 라면의 제조법을 독점하지 않아, 누구나 자유롭게 생산할 수 있었다. 이에 전중윤은 1961년 8월 24일, 식용유를 만들던 민성산업주식회사를 인수해 삼양제유주식회사로 변경했다. 인스턴트 라면의 핵심이 ‘기름에 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