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자질문자
1985년, 영국 서섹스 대학의 제프리 샘슨(Geoffrey Sampson) 교수는 세계 문자사에서 인류가 그림문자 → 단어문자(한자) → 음절문자(일본문자) → 음소문자(라틴문자) 순으로 문자를 발전시켜 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음소문자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문자 유형으로 ‘자질문자’(Featural Writing System) 개념을 제시했다.
샘슨 교수는 그의 저서 『문자체계(Writing Systems)』에서 한글이 음소문자의 상위 단계인 자질문자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어의 음소 체계를 분석한 결과, 한글의 글자 모양이 발음상의 변별적 자질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자질문자는 각 글자가 나타내는 음소들의 변별적 자질이 그 글자의 외형에 반영된 문자체계를 의미하며, 한글이 이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한글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지적 산물 중 하나이다.(제프리 샘슨)
6-1. 한글의 자질문자적 특징
자질문자의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예를 들어보자. 음소문자인 한글의 ‘ㄴ, ㄷ, ㅌ’이나 ‘ㅁ, ㅂ, ㅍ’은 소리가 유사할 뿐만 아니라 문자 형태도 규칙성을 띠고 있다. 반면, 같은 음소문자인 영어의 ‘N, D, T’는 소리는 유사하지만 문자 형태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 이처럼 소리의 유사성이 글자의 형태에도 반영된 것이 한글의 특징이며, 샘슨 교수가 정의한 자질문자의 개념과 부합한다.
이러한 특성을 가장 잘 활용한 사례가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천지인 자판’이다. 천지인 자판은 한글 창제 원리와 마찬가지로 자음과 모음의 기본 글자(천지인)에 획을 더하거나 겹쳐 써서 문자를 조합하는 방식을 따른다. 즉, 한글의 자질문자적 성격이 현대 기술에도 자연스럽게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현재 삼성, 애플, 구글 기본 자판 중 하나이다).
그러나 샘슨 교수의 주장은 반론도 존재한다. 자질문자를 독립적인 문자 유형으로 설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현재까지 인류 역사에서 완전한 형태의 자질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다만, 한글만이 어느 정도 자질문자의 성격을 갖춘 문자로 평가될 수 있다. 따라서 한글을 완전한 자질문자로 정의하기보다는, 자질문자의 요소를 가장 많이 포함한 독창적인 문자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6-2. 언어학적 접근과 앞으로의 연구 방향
비록 우리가 모든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언어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는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이 과학적인 방법에 근거할 때, 그것이 바로 언어학(Linguistics)이라는 학문이다.
언어학은 크게 다음과 같이 세분화된다.
◉ 음성학(Phonetics): 소리 자체를 연구
◉ 문법(Syntax): 문장의 구조를 연구
◉ 의미론(Semantics):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연구
◉ 화용론(Pragmatics): 언어 사용의 맥락을 연구
◉ 사회언어학(Sociolinguistics): 언어와 사회의 관계 연구 (예: 악센트, 방언 등)
◉ 심리언어학(Psycholinguistics): 언어와 인간의 인지 과정 연구
◉ 역사언어학(Historical Linguistics): 언어의 변화 과정 연구
참고로 이번 글은 사회언어학과 역사언어학을 중심으로 한국어와 한글을 다루었음을 유의하라. 물론 한국어와 한글에 대한 내용은 매우 방대하기에 앞으로 다른 언어들과 비교하면서 다양한 언어학적 관점에서 살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