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중국의 라미엔(납면)
3-1. 밀과 면의 기원
밀은 뛰어난 기후 적응력을 가진 작물로 다양한 환경에서 잘 자란다. 밀의 속살인 배젖은 무르고 속껍질인 밀기울은 단단하기에 빻으면 쉽게 으스러진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인류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지역에서 밀을 가루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밀은 농업의 기원과 함께 가장 오래된 식량 작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석기시대부터 유럽과 중국에서 널리 재배되었으며, 점점 밀가루를 곱게 갈 수 있는 제분 기술이 발달하면서 분식 문화도 다양해졌다. 이에 따라 반죽을 구운 음식(빵, 난, 과자 등)과 끓인 음식(국수 등)으로 발전했다.
중국에서는 면(麵)의 기원을 한(漢)대로 보고 있으며, 이후 제조법이 발달하여 위진남북조와 당송을 거치며 점점 가늘어져 오늘날의 국수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조리법이 발전하면서 면 요리의 명칭도 점차 세분되었다.
"북제(北齊)에서는 6월 복날 액막이 용도로 국수 장국을 먹었다." (형초세시기)
3-2. 라미엔의 의미와 역사
‘라미엔(납면, 拉麵)’은 특정 음식의 이름이 아니라, 중국 란저우 지역 후이족(回族)들이 사용한 국수 제조 방법을 의미했다. 이 기법은 반죽한 밀가루 덩어리를 길쭉한 나무토막처럼 만든 후 양손으로 잡아 길게 늘였다가 합치는 동작을 반복하며 가는 국숫발을 만드는 방식이다. 한국의 ‘수타면’과 비슷하다.
라미엔으로 만든 대표적인 국수가 바로 ‘뉴러우미엔(牛肉麵)’, 즉 우육면이다. 후이족은 전통적으로 이슬람교를 믿어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대신 소고기로 국물을 낸 라미엔 방식을 발전시켰다. 이 방식은 마치 한국의 설렁탕이나 곰탕처럼 소고기를 푹 고아 맑은 국물을 내는 방식과 유사하다. 현재 우육면은 크게 란저우, 샹양, 대만, 홍콩 등 네 가지 갈래로 나뉜다.
3-3. 일본으로 전해진 라미엔
1994년, 일본의 닛신식품은 중국 광둥성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고 ‘치킨라멘’을 출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닛신식품이 제품명을 번역할 때 ‘라미엔’이라는 개념을 차용하여 ‘지탕라미엔(鷄湯拉麵)’으로 명명했다는 것이다. 즉, 일본어 ‘라멘’이 다시 중국어 ‘라미엔’으로 돌아간 셈이다. 이 ‘치킨라멘’이 중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일부 중국인은 란저우 우육면을 ‘라미엔’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언어적 변천은 참 흥미로운 현상이다.
라미엔을 일본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명나라의 양명학자 주순수(朱舜水)이다. 그는 일본에서 유학을 강의하면서 라미엔을 소개했고, 에도 막부의 도쿠가와 미쓰쿠니도 이를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시기가 일본 라멘의 기원으로 보기도 하지만, 라멘이 일본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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