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개헌과 제6공화국, 시민이 헌법을 만든 날

13. 한반도 헌법의 역사 Ⅶ: 87년 개헌(제6공화국)

 

 
 

13-1. 스물셋 청년의 죽음, 민심을 흔들다

 

박종철 기념실
박종철 기념실(위키피디아)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경찰 고문 끝에 사망한 사건이 축소·은폐되면서 국민 분노가 들끓는다.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 군의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강민창 치안본부장)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의 거짓 해명은 시대의 상징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은 4·13 호헌 조치를 통해 기존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본인은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임기와 현재의 국가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중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이제 본인은 임기 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현행 헌법에 따라 내년 2월 25일 본인의 임기 만료와 더불어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할 것을 천명하는 바입니다. (중략)(전두환)

 

5월 18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에 의해 사건의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5월 27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가 결성되어 본격적인 투쟁을 시작한다.

 

 
 

13-2. 6월 항쟁, 광장의 힘이 역사를 바꾸다

 

6월 10일 민주정의당의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가 공식 선출된 시점에 국본은 서울 시내에 약 20만 장의 전당을 뿌렸고 본격적으로 6월 항쟁이 시작된다.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을 통해 전국 33개 시, 4개 군, 읍에서 180만 명이 참여해 절정을 이룬다. 드디어 6월 29일 대통령 후보 노태우가 전두환에게 건의하는 형식으로 6·29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대통령 직선제가 수용된다.

 

노태우
노태우(위키피디아)

 

이제 저의 구상을 주저 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구상은 대통령 각하께 건의를 드릴 작정이고 당원 동지 그리고 국민 여러분의 뜨거운 뒷받침을 받아서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본인의 결심입니다. 첫째. 여야 합의 하에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새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88년 2월 평화적인 정부이양을 실행하도록 해야겠습니다.(노태우)

 

6·29선언 이후 여당 민정당과 야당 통일민주당은 8인 정치회담을 열었으며 별도로 민주정의당은 야당 신한민국당, 한국국민당과도 4인 정치회담을 열어 헌법 개정을 위한 실무 논의를 진행한다. 그 결과, 1987년 10월 12일, 제6공화국 헌법, 즉 현재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된다. 제6공화국은 단순한 체제 변화가 아니라, 헌정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실증한 첫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