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가장 오래된 국가, '나사우 가문 빌럼 공의 노래(Wilhemus van Nassouwe)'
곡을 제외한 ‘가사’ 기준으로 보면 일본의 ‘기미가요’가 가장 오래된 국가로 종종 소개된다. 하지만 근대적 국가주의의 맥락에서 진짜 오래된 ‘국가(國歌)’는 따로 있다. 역사의 시계를 16세기 유럽으로 돌려보자.
이 무렵 유럽 각지에선 중세의 교회를 대신해 절대왕정 같은 중앙집권체제가 우후죽순 들어서고, 이들은 점차 ‘국가’와 ‘국민’이라는 개념을 앞세우며 애국심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흐름 속에서 시민 계급이 주도하는 최초의 주권국가가 등장하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네덜란드다.
3-1. 빌럼 1세와 네덜란드 독립운동
네덜란드의 독립 영웅인 오라녜 공작 빌럼 1세(Willem van Oranje)는 나사우 가문 출신이다. 그는 원래 동프랑크 왕국의 프랑켄 공국 출신 귀족으로, 후에 홀란트·젤란트·위트레흐트의 영주이자 앤트워프의 후작으로 성장했다. 빌럼 1세는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가톨릭을 앞세워 개신교를 탄압하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맞서 청원과 저항을 이끌었다.
1572년부터는 무장 독립운동으로 전환되었고, 귀족과 상공업자,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이 함께 싸우기 시작했다. 결국 1581년, 네덜란드연방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알렸다.
이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바로 빌럼 1세였기에, 그를 기리는 노래가 자연스럽게 애국가의 형태로 등장하게 된다. 이 노래가 바로 ‘나사우 가문 빌럼 공의 노래(Wilhelmus van Nassouwe)’, 흔히 ‘헷 빌헬뮈스(Het Wilhelmus)’라 불리는 곡이다.
가사는 1568년에 작성되었고, 빌럼 공의 1인칭 시점으로 쓰여 있다는 점이 매우 독특하다. 이후 1574년 프랑스 종교전쟁 당시 사용되던 멜로디가 붙으면서 지금의 형태가 완성된다. 참고로, 이 노래는 우리에게 익숙한 임진왜란(1592년)보다도 앞선 시대에 만들어졌다.
스페인의 폭압에 맞서던 시절, 이 노래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독립의 열망을 노래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1581년 독립 선언 이후 2절에 ‘폭군을 패배시킬 것’이라는 가사가 추가되면서, 단순한 저항의 노래를 넘어 독립 국가의 정체성을 담은 상징이 되었다.
3-2. 국가가 되기까지의 긴 여정
나사우의 빌럼
네덜란드인의 피를 타고 난 나는,
조국에 충성을 다하기를
죽음에 이를 때까지 다할 것이다.
오라녜 공으로서
나는 자유로우며 두려워하지 않는다.
스페인의 왕에게
나는 충성을 다해왔다.
나의 방패요 내가 의지할 이는
당신, 나의 주 하느님이니
나는 당신께 의지하고자 하나이다
나를 떠나지 말아주소서
그러면 나는 용감하게,
항상 당신을 위해 헌신할지니
그리고 폭군을 패배시킬 수 있을지니
나의 사무치는 마음으로
노래는 단순한 감정 표현이나 오락을 넘어설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함께 부르면 교육적 기능과 의사 전달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집단을 넘어 ‘국가’의 상징으로 발전하면, 세상을 바꿀 힘을 갖게 된다.
헷 빌헬뮈스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노래를 통해 사람들은 ‘국가’라는 개념, 그 안에서 국민이 공유하는 정체성과 가치, 희망과 저항을 체험하게 되었고, 이후 세계 곳곳에서 국가(國歌)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일본의 ‘기미가요’가 동양의 사례라면, 헷 빌헬뮈스는 서양에서 국가주의적 상징으로 가장 오래된 모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