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 혁명과 갈등의 상징

4. 군가에서 국가로, '마르세유의 노래(La Marseillaise)'

 

전쟁을 통해 탄생한 국가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는 가장 상징적인 사례다. 1792년 프랑스 제1공화국의 국민공회가 공식 채택한 이 노래는 세계 최초의 공식 국가로 인정받는다. 콘텐츠 채널 ‘워치모조’는 ‘세계 국가 TOP10’에서 라 마르세예즈를 1위로 선정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국가 중 하나다.

 

루제 드 릴
루제 드 릴(위키피디아)

 

원래는 ‘라인 군을 위한 군가(Chant de guerre pour l’armée du Rhin)’라는 제목으로, 공병 장교인 루제 드 릴(Rouget de Lisle)이 프랑스 시민혁명군의 출정가로 작곡했다. 1792년, 프랑스 혁명정부가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한 시점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사는 다소 호전적이고 과격한 분위기를 띤다. 실제로 1992년에는 이 가사의 수정을 요구하는 청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어나라 조국의 자식들이여!

압제자들이 우리를 향해 피 묻은 깃발을 쳐들었다

들리는가, 저 흉포한 적들의 으르렁거리는 서리가

저들은 우리 품 안에 뛰어들어 우리 처자의 목을 따려 한다

무기를 들어라 시민이여!

부대를 만들어 전진하라!

놈들의 더러운 피가 우리의 밭고랑을 적시도록!

 

 

 
 

4-1. 마르세유 군대에서 '라 마르세예즈'가 되기까지

 

니콜라 뤼크네르
니콜라 뤼크네르(위키피디아)

 

루제 드 릴은 이 곡을 라인 강 방면의 군사령관 니콜라 뤼크네르 원수에게 헌정했다. 이후 파리로 진격해온 마르세유 의용군이 이 노래를 부르며 진군한 데서 이름이 유래해, '라 마르세예즈'로 불리게 된다. 1795년 7월 14일, 프랑스 국가이자 군가로 공식 지정되며 국민의 노래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아르헨티나(1813), 페루(1821), 브라질(1831) 등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국가를 제정했고, 이후 그리스 왕국(1865), 필리핀 공화국(1898), 포르투갈 공화국(1911) 등에서도 국가 제정이 이어졌다. 이처럼 ‘국가’를 갖는 것이 주권국가의 상징으로 정착되는 데 라 마르세예즈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4-2. 사랑과 증오의 라 마르세예즈

 

제1·2차 세계대전, 그리고 1960년대 사회 변혁기를 거치는 동안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 국민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러나 이후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겪은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이 곡을 강한 국가주의와 폭력성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들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억압과 피지배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에서 지네딘 지단(Zinédine Zidane)을 포함한 유색인종 이민자 출신 선수들이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지 않고 침묵했던 장면은 상징적이다. 지단은 이후 이렇게 말했다.

 

“라 마르세예즈를 들을 때마다 섬뜩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라 마르세예즈가 항상 부정적인 존재만은 아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샤를리 에브도 테러(위키피디아)

 

2015년,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직후, 충격에 빠진 프랑스 국민들이 함께 이 노래를 부르며 애국심과 연대의식을 되찾은 장면은 아직도 강렬하게 회자된다. 국가의 상징으로서 위기 상황에서 국민을 하나로 묶는 힘을 발휘한 것이다.

결국 국가(國歌)의 의미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에겐 자부심의 상징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억압의 기억일 수 있다. 그래서 국가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와 정체성, 감정이 얽힌 복합적인 문제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